• 저자 : 무라카미 하루키
  • 태그 : 달리기, 에세이
  • ⭐️ : 5 / 5

“몸과 마음의 불꽃을 항상 뜨겁게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

입질을 기다리는 낚시 초보처럼 맹한 눈으로 서점의 책장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이 책을 발견하고는 아버지가 한 번 읽어보라고 추천해주셨던 것이 번뜩 기억났다. 그 당시에는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던 말이, 추천받았던 기억이 있는지에 대한 메타 정보도 없던 그 이야기가 툭 올라왔다. 재활 운동으로 시작해서 러닝의 맛을 막 알아가고 있는 중이라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러닝 인플루언서 하루키

참 민망하게도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 이 책 독자들 대부분이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을 읽은 후 이 책을 읽었을 텐데, 하루키의 첫 번째 글로 이 책을 읽은 나는 대단한 작가의 글이 아니라 오로지 ‘유명한’ 러닝 러버의 에세이 관점에서 즐길 수 있었다.

그가 러닝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글쓰기에 필요한 체력’을 기르기 위해서이다. 글쓰기도 육체 노동이라고 생각한 그는 본업에 더욱 충실하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했고, 26번(아마 이상, 지금은 더 하셨을 테니)의 풀코스 마라톤 완주, 철인 3종 등을 경험하면서 그에게 러닝은 단순한 체력 단련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깊은 의미가 만들어졌다. 나도 올해 인생 최고 수준의 운동 부족으로 인한 체중 증가 및 체력 저하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러닝을 시작하였고, 5개월 정도 되었다. 5개월 정도의 응애 러너로서 아주 피상적인 맛을 보고 있지만, 나도 점점 그 맛을 알아가는 중이다.

평냉 맛 에세이

글에 대해 조금 이야기하자면, 정말 편하게 쓴 일기 같은 글이지만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슴슴하면서도 깊은 맛이 느껴진다. 마치 평냉처럼. 아주 평범한 재료로 매우 번거롭고 정성스럽게 조리한 이 글의 맛을 느끼는 것이 재밌고, 흥미롭고, 영감을 준다.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술술 읽힌다. 정말 술술 읽힌다. 모든 맛이 적당하다. 적당하게 재밌고, 적당히 흥미롭고, 적당히 영감을 준다. 무엇보다도 술술 넘어가는 글 속에서 작가님이 어떤 사람인지 한껏 드러난다는 사실이 매우 놀랍다.

마음속의 장작

모든 사람은 마음속에 불꽃을 가지고 있다. 거센 세상의 풍파에 이 불꽃을 꺼뜨리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장작과 불쏘시개가 필요하다. 작가에겐 달리기이고, 나에게는 운동이다. 때로는 마음속의 불꽃과 세상에서 내가 해야 할 일들과의 연관성이 전혀 없이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인생의 시행착오와 경험들이 쌓이면서 마음속의 불꽃이 남아 있는 상황과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세상을 마주할 때의 나의 태도가 달라지는 것을 느끼고, 그 불꽃을 유지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At my own pace

무엇보다 그의 대단한 점은 바로 꾸준하다는 것이다. 20년 이상 하나의 취미를 이렇게 깊고 진심으로 꾸준하게 한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나는 10여 년 동안 무려 6번의 수술을 하면서 꾸준함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 끊임없는 기복 속에서 허우적대며 삶을 꾸준히, 진득하게, 깊이 파지 못했다. 환경과 상황이 너무 바쁘게 몰아치는 탓이라고 지금까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작가님은 어떤 도시에서 살든 꾸준하게 본인의 페이스대로 달려온 것을 보니 그것은 절대 환경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어디에 있든, 어떤 상황에 처해 있건, 헛된 욕심으로 덮인 거품을 얼마나 가라앉히고 내가 지키고 싶은 본질을 놓치지 않으려 얼마나 노력하는가에 달려 있었다.